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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인간은 강제노동을 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누구나 60세나 65세가 되어야 겨우 방면되는 종신강제노동을 선고받고 있는 것과 같다. 노동조합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전체 노동자의 요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자유를 바라는 인간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하루의 강제노동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이 한 세기를 돌아보면 우리들은 먹고 자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빼고는 쉴 시간도 없이 일해 왔음을 알고 있다. 하루 14시간, 1주일에 6일, 1년에 12달, 그리고 8, 9세부터 죽을 때까지 노동자는 혹사당해 왔다. 그것이 하루에 10시간, 다시 하루에 8시간으로 1주일에 5일, 1주일의 연차휴가까지 붙게 되고, 다시 또 연차휴가가 2주, 3주, 그래서 드디어 4주가 된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먹고 지낼 수 있는 정년은 65세, 60세로 인정되어 왔지만, 지금 어떤 직업에서는 55세로 허용되는 일도 있다.

현재는 점차 메뉴로부터 요리를 골라 먹듯이 노동의 선택이 자유로워졌다. 즉 일정한 기간 내에서 자기가 원 할 때 강제노동 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한 주 40시간의 노동을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하고 있다. 예를 들면 8시간씩 5일, 10시간씩 4일이라든지, 또는 새벽근무나 야근 따위이다.

그러면 가까운 장래에는 어떤 발전이 있을 것인가? 몇 개의 기업에서는 이미 하루 8시간 이하, 또는 7시간, 특정한 사람에 대해서는 6시간 또는 주 5일이 아닌 주 4일로 종업원을 쓰고 있다.

 

예를 들면, 파리지방 사람들은 통근시간으로 도심까지 2시간쯤 걸리지만, 이 지방의 기업에서는 통근시간을 제외해서 하루 6시간제로 근무하고 있다.

많은 기업의 유급휴가는 일년에 5주이지만, 몇몇 기업에서는 이미 6주인 곳도 있으며, 이러한 기업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기업의 종업원들은 점차 높은 급료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생활의 질’ 이라 부르는 것을 추구해서 보다 유연하 고 안정된 근무시간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많은 관리직이나 독립노동자들은 몇몇 사람들이 공동으로 한 가지 사업을 하기도 하고, 자유업 (변호사, 의사, 간호사 등) 도 "동사무소"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렇게 하면 기사나 우수한 기술자들은 똑같은 급료를 분배 받게 되므로 그들은 매일 4시간, 또는 2주일에 1일, 혹은 2개월에 1개월, 또는 1년 중 5개월 반만을 일하고 교대로 1년에 6개월 반의 유급휴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계속해서 절반의 급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유급휴가 기간동안 그들은 만약 원한다면 무언가 ‘강제적’ 이 아닌 일에 종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연구를 한다든지 책을 쓰거나 교양을 쌓거나 공부를 한다든지 ,, , , 여행을 한다든지, 요컨대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를 개화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을 것이다. 젊은 관리직들은 상당수가 점차로 월 6천 내지 8천 프랑을 벌기보다는 월 3 천이나 4천 프랑만 벌고 그다지 윤택하지는 않더라도 그대신 1년에 6개월 이상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지내는 편을 바라는 경향이 되고 있다. 특히 현재는 그들이 ‘가정’ 을 가지려고 결심했을 때 똑같은 조건으로 일하는 부인과 결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두 사람의 반씩의 월급을 합하면 완전한 한 사람의 월급이 되고, 게다가 6개월 이상의 유급휴가가 따르는 셈이 된다.

정년퇴직이나 은퇴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준비로’ 되도록 빨리 일을 끝마치려 고 한다. 그들은 수입이 적더라도 생활하는 시간을 더 활용하고자 한다. 하기는 "그렇게 말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대체 무얼 하는 게 좋다는 거지?" 라고 말하면서 은퇴 를 준비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 밖에 모르는 괴짜들은 별도지만.... 이것은 저들이 얼마나 교육에 의해 조건 지어 졌으며 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개성을 빼앗겨 버렸거나, 또 무언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 통해 자신을 개화시키는 일이 이미 불가능하게 되어 ‘일 ’ 이외의 것을 취미로 갖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 을 잘 보여준다. 이제부터의 교육은 점차 인간을 노동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개화로 향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장차 어떻게 될까? 노동시간은 점점 더 단축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하루 6시간, 다음 에는 5시간, 4시간, 3시간.... 으로 점점 짧아질 것이다. 반대로 연차휴가는 길어질 것이다. 여름에 1개월 반, 겨울에 2주, 부활절에 2주(학생들처럼 합계 2개월 반) 로, 그 다음에는 여름에는 2개월, 겨울에 1개월, 부활절에 1개월, 합해서 1년에 4개월이라는 등이다. 일도 차차 두 사람이 하게 되면 노동시간도 짧아져 두 사람의 "공동종업원" 이각각 1년에 8개월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또한 정년은 50세, 45세, 40세.... 로 점차 빨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할까? 당신 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하나의 문제가 일어난다. 당신이 받은 교육이 당신까지도 오염시켜 강제노동의 종 신형에 동의하도록 당신을 조형시켜 놓은 점이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타입이 나타날 것이다. 하나는, 하나의 천직 - 타고난 재능 - 을 갖고 여가 또는 퇴직 후에 자기가 좋아 하는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일함으로써 자기를 개화시키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여가를 자신의 교양을 높이거나 문화활동 혹은 스포츠 등 각자에 맞는 오락을 위해 활용하 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자유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항시있는 바캉스에서는 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작가, 화가, 시인, 연예인, 예술가가 점점 더 필요하게 될것이다. 때로는 생산자, 때로는 소비자로서 각 사람이 그 기호와 능력에 맞게 자유로이 입장을 바꿀 것이다.

일정 기간 - 가능한 한 빨리 - 이 지나면 노동시간은 점점 단축되고 정년은 점점 빨라져서 마침내는 의무적인 노동, 강제적인 노동이 완전히 폐지될 것이다. 일하는 것 이 취미이고 즐거운 사람들만이 자발적으로 노동을 계속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인권선언” 의 제 1조 에 “모든 인간은 어떤 대가도 없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라고 쓸 것 이다.

그러면 그때 가서 필요불가결한 일들은 전부 누가 맡을 것인가 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것은 기계가 해줄 것이다. 벌써 당신이 충분히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로봇 이 이미 인간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 가 ‘이미’ 하루 8시간 이상은 일하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다면 그것은 기계의 덕분이다. 만일 기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50 년 전과 똑같이 하루 10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피아트 회사는 차 한 대를 만드는데 년 전에는 명의 노동자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단지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나는 지금 "단지 한 사람" 이라고 말했다. 이 공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100% 자동화된 새로운 조립라인은 단 한 대의 컴퓨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 그리고 중앙통제실에는 단 한 사람의 기술자가 이 컴퓨터를 조작하고 감시할 뿐이다. 그리고 이 기술자 한 사람마저도 가까운 장래에 더욱 정교한 컴퓨터 한 대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농업에 있어서도 똑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어떤 특별한 포도의 재배자들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자동적으로 포도나무를 따뜻하게 해주고 물을 주거나 비료를 주는 한 대의 컴퓨터와 연결된 재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명백히 이 시스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 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예를 들어 공장의 소유자가 모든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들에게 더 이상 급료를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이제까지의 노동력이었던 노동자를 굶주리게 하고 자기들은 기계덕분에 파렴치하게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정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백명의 노동자를 대신하는 한 대의 기계를 설치한 경영자는 이미 할 일이 없어진 100명의 노동자들에게 계속해서 급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기계는 노동자들이 여가와 개화의 문명에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리석게도 기계가 인간을 예속화하고 기술은 사회에 있어서 인간성을 상실시킨다고 말한다. 그것은 틀린 말이다. 확실히 공장은 인간을 예속시킨다. 공장은 인간을 예속시키지만 로봇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또한 인간이 강제노동기계 또는 강제노동의 장소에 다니는 통근기계와 혼동되어지는 한에 있어서는 기술은 사회의 인간성을 상실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결코 기계 와 인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개화를 위한 장소에 존재하도록 창조되었고 반면 기계는 로봇이나 컴퓨터 에 의해 관리되어 노동을 위한 장소에 존재하도록 만들어 진 것이다.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노동은 모두 기계에 의해 수행 될 수 있다. 인간이 행하는 일은 모두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고 게다가 인간보다 훨씬 더 잘 해낸다. 인간은 실수 가 있지만 컴퓨터는 결코 실수가 없다.

만약 지구상의 군사예산에 사용되는 돈이 공장, 생산 현장 및 사무실의 개량에 투자된다면 7년 만에 노동은 완전히 자동화되고 인간은 노동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개화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기계는 일하도록 만들어졌다. 로봇이 인간의 작업을 해주는 것이지 인간이 로봇의 작업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모든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유감스럽게도 후자인 것이다. 그러면 누가 기계를 감시할 것이냐고 당신은 물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실로 간단하다 생산수단 의 완전한 자동화에 필요한 최초의 약 10년간은 군대가 그 감시와 유지를 위한 모든 일에 배속될 수 있다. 또 현재 매년 몇 주인가 스위스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처럼 병역을 대신해서 공적인 임무를 1년 내지 년2간 하도록 하는 제도를 창안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소집된 병사와 전문가 집단만이 각 생산 단위에서 일하게 되고 그 밖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된다. 자기 스스로 수리가 가능한 컴퓨터나 생물로봇 -- 여기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 -- 에 의해 감시, 유지, 수리되는 완전 자동화된 자동운용 및 자동관리의 생산 단위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아주 짧아서 일시적 기간 -- 약 7년 --에 불과하다. 이 생물로봇은 농업, 공업, 가사 또는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생물로봇은 인류가 DNA(디옥시리보핵산) 연구에 의해 이제 막 실험실에서 합성하려고 하는 물질, 즉 생명물질로부터 제조될 로봇을 말한다. 전자공학, 생물학, 인공지능(Cybernetics) 의 발달로 인해 만약 이 분야 의 전문가들에게 충분한 재정적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영역에서 최소한 인간과 동등한 능력을 갖는 로봇을 제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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