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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리는 책
최초의 만남
아홉 살 때부터 나는 줄곧 한 가지 열망만을 가져왔다. 그것은 자동차 경주였다. 3년 전 이 분야에 관한 전문지를 창간한 것도 남을 앞지르기 위해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이 스포츠의 열광적인 세계속에 몰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경주용 차의 선수가 되는 것을 꿈꾸었 나 자신이 위대한 팡지오의 뒤를 잇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잡지관계로 여러 번의 경기에 참가하다보니 나의 경주 실력은 상당하다고 할 정도가 되었고, 지금은 십여 개의 트로피가 내 아파트를 장식하고 있다.
1973년 12월 13일 아침, 내가 클레르몽 페랑(Clermont Ferrand, France)에 우뚝 솟은 화산으로 갔던 것은 드라이브를 즐긴다기보다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근 일년간 경주용 트랙에서 트랙으로 쫓아다니면서 늘 차바퀴 위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다리가 못 견딜 지경이었다.
아침 공기는 차갑게 느껴졌고 하늘은 안개가 낀 회색빛이었다. 나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차를 세워둔 길을 벗어나 퓨이 드 라 쏘라 (Puy-de-la-Sola)의 분화구 중심으로 갔다. 그곳은 여름에 가족 과 함께 자주 놀러온 곳이었다. 얼마나 웅장한 풍경이었던가. 수천 년 전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땅 속에서 뜨거운 용암이 분출되어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화산재 속에는 장식용이 될 수 있는 화산탄을 발견할 수가 있다. 햇빛을 받지 못해 난쟁이가 된 식물들은 프로방스 지방의 나무들을 연상케 했다.
그곳을 떠나기 전 나는 다시 한번 화산재의 퇴적으로 생긴 휘어진 산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스키를 타듯 이 급경사면을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얼마나 즐거워했던가. 그때 돌연 나는 안개 속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헬리콥터 같은 것이 내 쪽으로 내려왔다. 헬리콥터라면 소리가 들렸을 텐데 아무 소리도, 가는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기구(氣球)일까? 기체(機體)는 20미터 상공에 떠 있었으며 납작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비행접시였다!
오래 전부터 비행접시가 존재한다고 믿어 왔지만 나 자신이 직접 그것을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직경 7미터, 높이가 2.5미터 정도 되는, 밑바닥이 평평하고 위는 원추형 모양을하고 있었다. 기체의 하부에는 아주 밝은 붉은 등이 번쩍이고 있었으며, 정점에서는 마치 카메라 플래시와도 같은 흰 빛의 섬광이 간헐적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그 흰 빛은 너무 강렬하여 눈을 뜨고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기체는 소리 없이 하강하면서 지상으로부터 2미터 되는 곳에 정지했다. 나는 화석이 된 듯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무섭기 는커녕 오히려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기체 하부의 문이 열리면서 사닥다리 같은 것이 펼쳐져 땅에 닿았다. 누군가가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먼저 두 개의 발이 보였고 이어서 두 다리가 나타났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여겨졌다. 마침내 전신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가 어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계단을 내려와서곧장 내 쪽으로 걸어 왔다. 그때 나는 그가 1미터 20센티 정도의 키에도 불구하고 어린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약간 옆으로 길게 째져있었고 길고 검은 머리와 짧고 검은 수염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나로부터 10미터쯤 되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위아래가 붙은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었으나 이상한 후광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후광이 아니라 얼굴 주변의 공기가 가볍게 떨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감지할 수 없는 고운 기포로 된 보이지 않는 막을 쓰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피부색은 흰색이었으나 간이 나쁜 사람처럼 약간 녹색 빛을 띠고 있었다. 그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미소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답례하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숙였다.
그도 똑같이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그가 내 말을 알아듣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는 힘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는데 발음은 정확했고 약간 콧소리였다.
“아주 먼 곳에서…”
-프랑스 말을 하십니까?
“세계의 모든 나라 말을 하지요.”
-다른 행성에서 오셨습니까?
“네.”
얘기하는 동안 그는 내 앞으로 2미터 되는 곳까지 다가왔다.
-지구에는 처음 오신 겁니까?
“아니요.”
-그럼, 자주 오십니까?
“매우 자주 옵니다. 그래도 부족하지요.”
-무엇 때문에 오시지요?
“오늘은 당신과 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게요?
“네, 클로드 보리롱 씨, 스포츠카에 관한 작은 잡지의 편집인으로 결혼은 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지요?”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우리들은 오랫동안 당신을 관찰해 왔어요.”
-왜 하필이면 나를?
“그것이 바로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추운 겨울아침에 왜 여기 왔지요?”
-모르겠어요. 그저 맑은 공기나 쐬며 산책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여기 자주 오나요?”
-여름에는 자주 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겨울엔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왔지요? 오래 전부터 산책하려고 계획했나요?”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 눈을 뜨니까 웬일인지 모르게
불현듯 여기 오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여기 온 것은 내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텔레파시를 믿습니까?”
-네. 그건 제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일 뿐 아니라 ‘비행접시’와 관련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그것을 직접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좋아요. 나는 텔레파시로 당신을 여기에 불렀어요. 당신에게 해야 할 얘기가 많이 있습니다. 성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까?”
-네. 그런데 그걸 왜 묻습니까?
“성서를 읽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였나요?”
-아니요. 불과 며칠 전에 샀습니다.
“왜지요?”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읽고 싶어졌다고나 할까…
“그것 역시 내가 텔레파시로 당신에게 성서를 사게 했습니다.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이 많아요. 나는 매우 어려운 사명 때문에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나의 우주선으로 오세요. 거기가 얘기하는데 더 편할것입니다.”
나는 그를 따라 우주선 밑의 작은 계단을 올라갔다. 가까이서 보니 우주선은 견고하고 두툼한 바닥으로 이루어진 납작한 종 모양을 하고 있었다.선내에는 팔의자가 두 개 마주보고 있었고 문을 닫지 않았는데 도 기온이 따뜻했다. 전등은 보이지 않았으나 자연스러운 빛이 사방에 서 흘러 나왔다. 조종석이나 항공계기반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바닥은 약간 푸른빛이 나는 빛나는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크고 낮은, 약간 투명하고 색깔이 없는 단일재료로 만들어진 매우 푹신한 의자에 앉자 그 우주인도 나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의 의자는 내 것과 같았지만 조금 작고 높아서 그의 얼굴이 내 얼굴과 같은 높이가 되게 했다.
그가 벽의 한 부분을 만지자 기체 전체가 바닥과 천장을 제외하고 투명해졌다. 우리는 따뜻한 야외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내게 코트를 벗으라고 권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이윽고 그가말을 시작했다.
“당신은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후회하고 있지요?
우리들의 회견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물적 증거로써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잘 들으세요. 당신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본 다음 우리 자신을 공식적으로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을지 어떨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우선 당신 자신이 모든 것을 잘 알아야 하겠지요. 당신은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을 적절히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사실을 기록하여 책으로 출판하도록 하세요.”
-그런데 어째서 저를 선택하셨습니까?
“이유는 많아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을 택해야 했습니다. 프랑스는 민주주의가 태어난 나라이고 세계적으로 자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짙지요. 또 우리는 지성적이고 마음이 열린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 이라야 했습니다. 당신은 아버지가 유태인이고 카톨릭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세계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두 민족을 이어 주는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외에, 당신의 경력이 믿기 어려운 사실을 밝히는 일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당신의 말은 더욱 신빙성 있게 들릴 것입니다.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사물 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간략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또 문학가가 아니기 때문에 문장을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드는 일도 없겠지요. 끝으로 우리들은 1945년 최초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래 태어난 누군가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1946년에 태어났지요. 우리들은 당신의 탄생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당신을 줄곧 지켜보고 있었어요. 이것이 당신을 선택하게 된 이유입니다. 다른 질문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아주 먼 행성에서이지요. 그러나 이 행성에 대해서는 지구인이 현명하지 않을 경우 우리들의 평화가 교란될 우려가 있으므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아주 먼 곳에 있습니까?
“매우 멀지요. 거리를 말한다고 해도 당신들의 현재 과학 기술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거리일 것입니다.”
-당신들은 자신을 무어라고 부릅니까?
“우리들도 당신들과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행성도 지구 와 매우 비슷합니다.”
-지구로 오는 데는 얼마나 걸립니까?
“생각하는 시간만큼 걸립니다.”
-왜 지구에 오십니까?
“인간이 얼마나 성장했나 보고 또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에겐 미래가 있어요. 우리들은 과거의 인간이지요.”
-당신들도 인구가 많습니까?
“당신들보다 훨씬 많아요.”
-당신들의 행성에 가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안돼요. 우선 대기가 아주 다르기 때문에 당신은 그곳에서 살
수가 없어요. 또 당신은 여행에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요.”
-그런데 왜 장소를 여기로 택하셨습니까?
“화산의 분화구는 침입자의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이지요.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군요. 내일 같은 시간에 성서를 지참하고 필기도구를 가지고 오세요. 금속제 물건은 가져오지 않도록 하세요.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이 회견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얘기해선 안됩니다.”
그는 작은 계단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코트를 건네주고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계단이 물러가고 기체의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우주선은 아무 소리도 없이 400미터 정도 상승한 다음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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