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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적설계/각성의로의 여행

사랑

우재1 2023. 7. 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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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세요, 있는 힘을 다해 열렬히 사랑하세요. 사랑한다는 것은 완전히 결합되고, 모든 것을 주고 싶고, 완전히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는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는 기쁨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선물을 주는 사람은 선물을 제공하는 사람 이 아니라 선물을 기꺼이 받아주는 사람입니다.

선물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남몰래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존재”의 선물입니다. “소유” 의 선물과는 다르지요. “소유” 의 선물은 상대 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것일 뿐이며 감사의 말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감사의 말을 듣기를 기대하며 이 선물 을 드립니다. 당신의 감사는 나를 기쁘게 하고 나 자신이 중요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런 것은 겸손 과는 정반대입니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에게 항상 행복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또 가장 많은 사랑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돈과는 정반대입니다. 돈은 다른 사람에게 줄수록 점점 줄어들지만, 사랑은 줄수록 많아집니다.

사랑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우리는 사랑을 잃게 됩니다. 사랑은 점점 줄어들며 쇠약해지고 말라버리지요. 그러나 사랑 을 주면 마치 마법과도 같이 사랑은 커지고, 우리도 더욱 더 사랑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마음껏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사랑을 주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어 그들이 조화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들의 행복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어 그들이 여러분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여러분주위로행복을퍼뜨리세요. 언제나 작은 행복의 선물을 주위에나누어주세요. 매일 매일을 행복을 주는날로 만들어 나가세요.

사랑은 의식의 열매

사랑은 지구에서 가장 부족한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두뇌가 올바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을 발산하지 않는 두뇌는 고장 난 두뇌입니다. 미움과 폭력을 만들어내는 두뇌는 호르몬 대사와 전기화학적 작용에 이상 이 있는 두뇌입니다. 더 이상 사랑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두뇌는 의식이 점차 약해지고 심지어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 져버리기도 합니다. 의식 또한 두뇌의 물리화학적인 작용입니다.

폭력과 미움과 살인 등은 우리 두뇌의 분비선 기능에 물리화학적인 혼란이 생겨 호르몬의 균형이 깨어짐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호르몬 분비선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이나 미움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의식과 사랑은 같은 것입니다.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상상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행동을 통해 두뇌를 훈련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뇌가 사랑을 주게 하는 연습을 함으로써 우리 두뇌가 더 잘 기능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두뇌를 훈련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 내부의 모든 것들과 우리 외부의 모든 것들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특히 대중이 하는 대로 따르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기준 과 반대되는 관점을 생각해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되는 관점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어떤 것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나쁘다고 말할 때 그것의 좋은 면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둘 때 여러분의 두뇌는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첫눈에 알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이해하려고 항상 노력 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발명품, 훌륭한 음악, 기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의 두뇌를 강화하고 여러분의 지성을 강화하세요. 그렇게 하면 두뇌의 사랑을 관장하는 영역이 비옥해지고 사랑이 성장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을 경우, 진정한 사랑이란 이럴 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왜?” 라고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의식을 강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의식을 강화시킴으로써 여러분은 사랑을 발달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미움은 약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과 동정심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은 언제나 해답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흉악한 범죄자나 가장 나쁜 일에 있어서도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점은 항상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음 양의 법칙에서 말하는 것이지요. 검은 물방울 속에 작은 흰 원이 있으며, 흰 물방울 속에도 작은 검은 원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검은 것에 도 항상 어떤 좋은 점이 있고, 가장 흰 것에도 항상 어떤 나쁜점이 있기 마련이지요. 검은 것이 악이고 흰 것이 선 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우리는 항상 틀리는 것입니다.

 

“ 우리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2002년 3월 캐나다

우리는 지구의 먼지로 부터 태어났습니다. 만약 먼지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우리 창조자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한줌의 먼지로 남아 있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무한에 비교 한다면 별반 차이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의 창조자들은 이 먼지들을 모아 의식이 있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창조자들은 먼 지에게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는 것이지요.

그 차이는 엄청납니다.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면 우리는 더 이상 떠도는 먼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만약 우리가 단지 시간과 공간을 헤매기 위해서만 의식을 사용한다면 그대로 먼지로 남아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먼지가 움직일 때는 오염이 발생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엘로힘이 우리를 창조한 까닭은 우리에게 먼지가 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능력을 전해주어 우주의 다른 먼지 조각들도 나중에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인간 은 생명을 창조하는 임무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생명에 의식을 불어넣는 사명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이유입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부모에게는 크나큰 기쁨이기는 하지만 그 아이에게 의식을 전달하는 것은 훨씬 더 큰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창조자들이 처녀지였던 지구에 와서 미래 에 수십억 명으로 불어날 의식의 존재들을 탄생시켰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해보세요. 그들은 참으로 벅찬 행복 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식을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줌의 먼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내 옆 의 다른 먼지나 내 발 밑의 먼지들과 다른 점은 나는 내 발 을 느낄 수 있고 또 내가 차지하는 물리적 공간을 느낄 수 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내가 무한의 일부 임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 이것이 바로 의식이 나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의식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내가 그 위를 딛고 걷는 것 외에는 달리 존재할 목적이 없는 한줌의 먼지 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또한 내 주위에 다른 의식의 존재들이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사랑이 구체 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나는 내 옆의 사람이 나 자신의 연장일 뿐이며 우리는 모두 서로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란 영원의 시간 속에서 동일한 순간에 함께 여행하고 있는 다른 먼지들을 더 이상 이방인으로 여기 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옆이나 또는 멀리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또 그들도 나와 함께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리고 우리는 모두 과학을 이용하여 우리의 의식을 영원히 확장시킬 수 있는 동일한 기회를 갖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럴 때 나는 오직 사랑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겸손이 너무나 부족하여 이런 사랑에 눈뜨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먼지 각하” 라고 부르면서 우리가 이 지구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우리는 아직 배워야할 것들이 무한히 많이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겸손 또한 사랑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사랑의 수준을 측정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둘러 싸여 있고 사랑 속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사랑을 측정 할 줄은 모릅니다. 사랑이 인간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측정단위라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체 덩어리로서 그 속에 깃들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으로 되거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으로 되기 위해 그다지 많은 부분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조그만 차이로 여러분은 여러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옆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의 몸 속에, 그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세요. 그의 신발 속에서는 어떤 느낌이 듭니까. 만약 그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그를 미워하고 때릴 수가 있겠습니까?

“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다.” 라는 식으로 우리를 구분 짓는 것은 전적으로 인위적이며 크나큰 잘못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그의 몸에 있던 분자가 내 몸의 일부로 안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이 우주적 의식의 일부입니다. 공간과 시간을 여행하는 짧은 순간 동안 살아 있음을 인식하는 한 조각 무한인 것이지요. 그러나 단순한 먼지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함께 이 무한의 시간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친밀함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지구” 라는 같은 배를 타고 여행하고 있으니까요.

“진정한 사랑은 친구보다

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2001년 7월, 이탈리아 세미나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들의 지혜나 철학적 가르침보다 우리 의 존재를 가장 잘 밝혀주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많은 방식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육체관계를 맺다” 라고 할 때 흔히 “사랑을 나눈다” 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위는 사랑이라기 보다는 유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과, 몸과, 성기를 가지고 놀면서 서로 기쁨을 주는 행위이지요. 이것은 “놀이” 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반면에, 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의 관계를 의식할 때 우리는 “사랑” 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거나 멀리 있는 사람이거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려면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나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 법, 나 자신을 이해하는 법, 나 자신을 아는 법, 나 자신에게 동정심을 갖는 법을 먼저 알아야만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만약 내가 나를 위해 가지고 있는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수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지도 않은 것 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멀리 있거나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예수 시대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절박했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소중 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웃을 죽이는데 아무런 가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문명화되었습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웃보다 이방인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전쟁은 항상 이방인들보다 이웃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부족은 사랑했지만 강 건너편 에 사는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국경 저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과 학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인류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이웃보다 이방인 들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백인이라면 백인보다 흑인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동성애자라면 동성애자 보다 이성애자를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후투족이라면 후투족보다 투치족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지리적이거나 인종적 이거나 어떤 그룹의 일원이라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껴왔습니다. 프랑스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일본인 또는 캐나다인 임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으로 태어났 음을 자랑스러워했을수도 있겠지요. 이것은 자연 스러운 일 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장과정에 겪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이것을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생각해보세요. 차별에 기초한 이런 분리형 사랑을 버려야 합니다. 한 마을과 다른 마을,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지구와 다른 행성, 이런 구별을 버리고 모든 것을 끌어안는 우주적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인종차별을 뛰어넘으세요. 이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신체적 차이든, 행동 양식의 차이든, 성적 차이든, 어떠한 차이도 더 이상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한정시켜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나의 의식과 교감하는 다른 의식이라고 자신에게 말해보세요. 민족주의, 사랑결핍, 차별 같은 것은 모두 우리 자신을 제한시켜 다른 의식들과 교류하는 것을 막습니다. 자신을 제한시킬 때마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욕구를 키우세요. 놀라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차단하고 있는 장벽을 제거하세요. 원초적인 증오를 잘라내 버리고 여러분 의 문화에서 한 발짝 나와 바깥세계를 탐험해보세요. 그리고 미움이 생길 때마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보세요. 그러면 사랑이 보일 것입니다.

서로 교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의 모든 것입니다.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웃보다 이방인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듯 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과 의식의 욕조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흑인과 백인과 황인종을 구분하며 욕조에서 몸을 빼고 멀어지려 합니다. 욕조에서 나가지 마세요! 여러분은 사랑과 우주적인 우애와 의식의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우애와 의식은 여러분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 내부에도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느껴보세요.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함께 사랑의 욕조 속에 잠겨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이며 우리를 . 갈라놓는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게 하는 장벽을 우리 스스로 만들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이며 그 외의 것은 단지 착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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