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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정신성

"살아 있다는 것의 유일한 특권은

우리가 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의식적일 때

우리는 자신의 의식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고

살아있음에 대해 행복을 느낍니다."

나는 하나

나는 하나입니다. 명상할 때 이런 융화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진정한 . 명상 상태를 느끼는 데 수 년씩이나 수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태는 즉각적인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수년간의 수련이 필요한 것은 우리 내부의 일체감을 느끼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일체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 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과도 하나 됨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정신은 깨끗한데 몸은 더럽다고 느끼는 등 나 자신 안에 이런 구분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선 나 자신을 융합하는데 성공한 후에라 야 다른 사람들과의 융합을 도모하는 다음 단계로 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나 자신과 하나 된다는 것은 우주, 무한, 기타 모든 것들과 하나 됨을 의미할 뿐 아니라 무(無) 와도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부와 무(無) 는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며 또한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나 사이에는 더 이상 거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하늘의 별들과 나 사이에도 거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와 여러분 사이의 거리는 나와 내 몸 바로 밖에 있는 원자 사이의 거리보다 더 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한은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이해하고 느끼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의식에 도달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자신이 의식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의식의 한 조각이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의식 또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에서는 개별의식과 집단의식 사이에 구분이 없습니다. 우리는 집단무의식에 대해 자주 말합니다. 그러나 집단 무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단의식인데, 이것은 지구적일 뿐만 아니라 우주적이고 또 무한합니다. 집단의식은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 간의 일체감입니다.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무한 속에서 일체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무한의 느낌

무한을 느낀다함은 무한의 시간 및 무한대와 무한소의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과 연결시키는 이일체감을 느낄 때 우리는 진정한 의식의 존재가 되며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이루기 위해 합쳐진 약간의 물질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 것이지요.

나는 여러분 안에 있고 여러분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내일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이 무한의식은 여러분 안에 살아 있을 것이며 여러분은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존재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올바른 의식을 갖는 것은 나의 존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런 의식 속에 있다면 나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들 속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여러분 또한 그럴 것입니다. 이런 일체의식과 무한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방향으로 모든 곳에 존재하며 또한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의식함 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런 무한의식은 우리를 빛나게 만들어주고 우리를 일깨워주며 행복하게 해줍니다. 돈이나 큰 집, 좋은 차, 학위 등 피상적인 행복들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지식과 소유는 각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존재” 는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 는 무한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소유” 할 수도 없고 행복을 “알” 수도 없지만 행복하게 “존재” 할 수는 있습니다. 소유와 지식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존재”는 항상 나의 의식을 높여줍니다. 의식을 발전시키기로 결심한 사람의 지성은 나이도 멈출 수 가 없습니다.

 

의식의 3단계

의식의 첫 단계는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 반응을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욕구와 좌절감에 구속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종종 공격적이며 때로는 폭력적 이기까지 합니다. 그는 충동적으로 행동한 후 자신의 주위 에 벌어진 결과에 대해 후회합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의 말이나 행동들이 자신의 생각을 벗어나버리기 때문입 니다.

이런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고통 받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는 자신의 욕구가 한 번도 충족되지 못해 괴로워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자기 외부의 요인들에 맡겨두는 한, 그리고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자존심을 세워주는 찬사를 타인들로부터 기대하는 한 그는 끝없는 좌절상태에 빠 져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완전히 초연해지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우리 육체와 두뇌의 반응을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하며 또한 모든 쾌락을 거부함과 함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다양한 쾌감에 수반될 수 있는 불만족의 가능성도 거부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매우 안이한 탈출입니다. 어떤 쾌락도 추구하지 않으면 당연히 어떤 좌절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않는 사람은 시험에 빠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위험을 멀리하면 평정 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 다음 이런 태도가 지혜로움 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자신을 납득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논리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것을 고쳐가면서 계속 발전해 나갑니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은 곧 승리이며, 각성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절제의 단계입니다. 즉 모든 감각을 즐기기를 거부하는 단계이지요.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유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산 속이나 수도원 안에 혼자 고립된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더러워지는 위험을 철저히 피하면 깨끗한 채로 남아있긴 쉽습 니다. 그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동안에도 우리의 인생은 기쁨과 고통과 함께 흘러갑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단계가 있는데, 의식을 갖고 인생을 즐기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들과 각종 유혹 속에서 우리 사회와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단계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웃음과 조화를 잃지 않으면서 우리 의 모든 감각과 내면의 음악과 능력을 사용하여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 마음껏 즐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고향 아이스하키 팀의 열렬한 응원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키 선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시합 에 나가 이기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 들을 제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되 사랑에 빠지지는 않고 어느 수준의 초연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미묘한 균형이지요! 욕망을 갖고 또 충족시키며 의식적으로 쾌락을 즐기는 것과 동시에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 우리 자신을 활짝 열고 삶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쾌락을 즐기는 것입니다. 우주는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외적인 쾌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는 쾌감 의 원천을 우리 스스로 자극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 나의 기쁨을 만드는 것은 바로 나이며 따라서 내가 원했 던 기쁨을 거부 당하더라도 나는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내부의 기쁨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며 이런 기쁨 은 우리를 절대 좌절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기쁨을 완벽하게,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특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에는 미묘한 균형이 요구되지만 이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내가 꽃에 얼굴을 갖다대고 그 향기를 들이 마시고 있는데, 비록 꽃들이 나를 외면하더라도 나는 조금도 실망하거나 불행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초연한 상태라 함은 세상의 모든 기쁨들이 경이롭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쾌감은 쾌감일 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쾌감을 필요로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필요 한 것은 먹고 마시고 자는 것 등 얼마 되지 않으며, 그 나머 지는 모두 욕구에 불과합니다.

우리 기쁨의 원천을 한 가지 일, 한 사람, 한 가지 열정, 한 가지 쾌감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무한대로 다양화시켜야 합니다. 가능한 한 많은 종 류의 쾌감을 맛보세요. 그렇게 하면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우리를 버리더라도 나머지는 우리에게 남아 있게 될 것이며, 비록 한 가지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여전히 행복할 수 있 으며, 심지어 그것마저 없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의식

2001년 12월, 콩고에서 열린 토론

의식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은 우리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 입니다. 겸 허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우리는 먼지에 불과하며 또 우리는 어머니가 우리를 배 속에 가졌을때 어머니가 먹은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음식을 먹으면 그 덕분에 나의 세포들이 재생됩니다. 그러다가 먹는 것을 멈추면 나는 곧바 로 먼지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약간의 당근과 감자, 고기, 생선 등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것들을 통해 나의 의식이 계속 표현됩니다. 모든 생명체와 모든 인류가 그렇듯이 나도 먼지에 불과합니다. 나는 먼지 덕분에 살고 성장하는 먼지이며 죽어서는 다시 먼 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립니다. 이것이 바로 먼지 의 영원한 순환입니다.

피부색에 관계없이 인간은 누구나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한 조각 먼지에 불과하지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나와 같은 시간, 같은 행성에서 어느 날 무한의 몇 조각 들이 합쳐져 여기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함께 존재하면서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 함께 의식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게 됩니다. 1분 후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우리의 심장이 멈출지 모릅니다. 혹시나 나도 이 말을 마치자 마자 죽을지 모르지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 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여러분 곁에서 죽을 수 있어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금 바로 한번 쳐다보세요. 그들이 잠시 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바라 보세요. 여러분 중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 자녀를 불의 의 사고로 잃고서는 그들을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하고 또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먼지로 돌아가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너무 늦어 버리기 전에 망설이지 말고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우리가 깨닫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도 서로 죽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엔 인생이 너 무나 짧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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