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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제 요소와 합치된 일종의 자유를 재발견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과학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은 최초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가로막고 있는 자연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간은 생활의 전 시간을 그것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위해서 아주 하잘것없는 도구라도 그것을 만들기에는 몇 시간을 필요로 했다. 농기구의 경우는 또다시 더 많은 시간을 요했다. 다음으로 산업시대가 되자 인간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매일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비록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매일 중 몇 시간, 점차 매년 중 몇 개월인가는 살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잡다한 일은 가정용 기구에 의해 경감되어 왔다. 땅에 꿇어앉아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하는 세탁에 매주 3시간을 소비하는 대신 현대여성은 세탁기에 분말세제를 넣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과학이나 진보를 거절하는 것은 이 편리함을 거절하는 것이며 공동세탁장 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향수를 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자기 스스로 속옷을 한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을 바라는 여성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그 실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전원이나 산양 또는 밭의 감자는 주말에 별장으로부터 바라보는 광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과학의 진보를 거부한다면 매일 아침 해 뜰 때 일어나서 산양의 젖을 손수 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산양을 위한 겨울준비로 손수 건초 를 베고, 감자를 손으로 캐내고, 불을 지피기 위한 나무를 해 와야 하고, 입을 옷을 꿰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독서를 한다든지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글 을 쓴다든지,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개화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그것을 위한 1분의 여유조차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바랄 수 없다. 퇴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인간은 과학의 진보와 함께 계속해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으로부터 불편을 견디면서 겨우 먹을 것을 얻는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인간은 오직 그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노동이 완전히 자동화되어 이미 화폐가 존재하지 않게 되면 인간은 자연의 제 요소와 조화해서 자기개화를 위해 자연과 일치가 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서 생활하기 위해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때 희망하는 자는 산양을 기르고 감자를 심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들이 즐기기 때문이지 그들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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