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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문명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종교들은 이런 노동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부를 쌓기 위해,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부추겼다. “이마에 땀흘려 일용할 빵을 얻어라” 라고 성서는 말한다.

반면에 쾌락, 오락, 게으름 등은 「죄」 라고 비난받았다. 이것은 성에 관련해서는 특히 더했는데 성은 오직 생식의 수단으로서만 허용 되었다. “정직한 여성은 쾌감을 갖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여성 성기절제에 관한 철학과 그리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매일 12시간씩, 일주일에 7일, 일년에 365일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뒤 일요일이 휴일이 되었고, 그런 다음 일년에 일주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그리고 이 휴가 기간은 2주일, 3주일, 4주일로 늘어나다가 마침내 어떤 나라들에서는 5주일까지 되었다. 주 근무시간은 8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 들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최근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우리는 점차로 레저문명으로 향하고 있으며, 레저산업도 생겨났다. 이 산업에는 관광업도 포함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순수한 기쁨을 얻기 위해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性) 도 새로운 의미로써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는 피임법을 이용 함으로써, 성을 생식의 수단으로서만 생각하는 대신 순수하게 기쁨만을 위해 성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으리라” 라는 그 유명한 성경 구절처럼 임신을 신의 징벌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성이란 생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쾌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쾌감이다.

이제 사람들은 모든 행위로부터 쾌감을 얻기를 원하며, 또 더 많은 쾌감을 얻고 싶어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로부터 쾌감과 죄의식을 연결시키는 사상 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므로해서 모든 사물이 쾌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훨씬 더 개화할 수 있게 되어 폭력과 무력의 행사는 줄어들게 된다. 즉 인류는 보다 문명화되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문명이 탄생하려 하고 있다.

나는 그리스나 로마 또는 이집트 같은 고대문명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웃는다. 그것들은 「문명」 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을 베어 죽이거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가능하면 처녀를 산채로 제물로 삼아 제사지내거나 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야만인들의 집단에 불과했다.

문명 (civilization) 이란 예의바른(civil) 것을 의미한다. 즉 비군사적이며 비폭력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문명사회, 즉 비군사적인 사회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문명사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꼭두각시인 UN을 통한 경제제재로 인해 매일 수백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역사상 인류에게 자행된 가장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에 대한 재판조차 받지 않고 있다. 즉 그들은 파렴치하게도 100% 시민들을 표적으로 하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던 것이다.

군대가 완전히 폐지되고 비폭력적인 사회가 되어야만 진정한 문명 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자기완성에 기초한 사회 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완성을 통해 너무나 큰 기쁨 을 얻게 되므로, 전쟁터에 나감으로써 그것을 잃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들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노동과 고통에 시달리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쌍수(雙手) 를 들고 환영할 만한 기회가 된다. 그들은 영웅이 되어 훈장을 타고 이름을 날리며 새로운 땅을 구경할 꿈에 젖어 큰 희망을 품고 노래부르며 출전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기쁨이 넘쳐흐른다면, 일주일에 몇 시간 동안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자기성취를 위해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으며 긴 휴가 동안 스포츠, 영화, 컴퓨터, 안가본 나라 에로의 여행 등 끊임없이 새로운 기쁨을 즐기며 살고 있다면, 아무도 전쟁터에 나가서 명성을 쌓으려들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이제 너무나 끔찍한 영웅주의의 실체가 마침내 모두 드러났다. 오늘날 우리는 뛰어난 영상기술을 이용한 현장보도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헛되고 무서운 것인지 생생히 볼 수 있다. 망가진 얼굴, 찢겨진 몸, 지뢰에 떨어져나간 다리, 플라스틱 가방에 담겨 고국으로 후송되는 시체. 이제 우리는 보도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사진들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까짓 훈장 하나 타기 위해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쓴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냐...” “내가 가진 것을 즐기며 집에 있는 편이 더 낫겠어.”

모든 형태의 쾌락은 군국주의와 종교의 적이다.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해 이 두가지 독소는 언제나 연합해 왔다. 그것이 소위 . ‘검과 십자가 ’ 의 연합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쾌락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 행해진다.

이 쾌락의 문명으로 향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여성의 해방 이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영원한 노예로 간주되어 너무나도 고통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과학의 혜택으로 더 이상 사람들의 옷을 빨거나 그릇을 씻으러 강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여성들이 이제는 자신의 성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피임법을 이용함으로써 스스로의 선택으로 생식(生殖) 대신 쾌감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의 중절수술 또한 여성들의 결정권을 강화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리하여 점차적으로 성은 인간에게 있어서 쾌락을 얻는 가장 큰 수단들 중 하나로 확립되어 가고 있다.

지구상에는 이미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고 또 인구과잉 문제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이러한 오늘날에도 오직 교황만 이 피임과 중절수술을 모두 비난하며 “가서 번식하라” 라는 현실과 완전히 괴리된 전통적인 가르침을 계속하고 있다.

교황들은 대대로 이 낡은 지침을 가르치는 전통을 답습하고 있다. 물론 “가서 번식하라” 라는 메시지는 수천 년전 인구가 적었을 당시에 통용되었던 말로서 지구 곳곳에 사람들을 거주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유용했겠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성서에 써 있기 때문에 교황으로서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지구상의 인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어나 1,000억 또는 2,000억에 달하게 되어 인공적으로 지구표면을 3층으로 만들어 거주하지 않으면 안되고, 사람들이 쏟아내는 병균에 오염된 수백만 톤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유독한 악취에 오염되어 지구상 모든 생명체 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스러운 글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교황은 여전히 “가서 번식하라” 라는 낡은 구절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카톨릭교도들의 숫자는 그런 때가 되기 전에 대폭적으로 줄어들 것이며,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은 일요일 아침 미사 때 거의 텅 빈 교회가 증명하고 있고, 사제가 되려는 신학생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데서 알 수가 있다.

성의 자유가 점차적으로 확립되어 감에 따라 그것은 낡은 종교적 금기를 깨뜨리는 데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 결혼에서는 두 사람을 ‘영원히 함께 ’ 묶어 놓았지만 기쁘게도 이 전통 또한 그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35세 밖에 되지 않았던 100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배우자와 영원히 함께 살기는 쉬웠다. 당시의 사람들이 20세 쯤에 결혼 했다면, 실제로 이 「영원」 이란 15년보다 더 길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평균수명이 85세 까지 늘어났으므로 「영원」 도 15년에서 65년으로 길어졌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전혀 달라진다.

자식이라는 생물학적 유대가 생기고 그들이 자라는 것을 함께 지켜보면서 15년 동안 함께 사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겠지만, 그러나 자식들이 어른이 되어 가족의 울타리를 떠나가 버리고 나면 함께 산다는 것이 매우 힘들어진다.

오늘날은 특별한 정신적 연결이 없는 한, 두 사람이 40세 까지 함께 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40세라면 이미 인생의 절반 을 같은 사람과 산 셈이 되며, 또 앞으로 45년 동안 아기를 다시 가질 마음도 없으면서 함께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결혼의 50%가 이혼으로 끝나고 있 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성장하기 전이라도 이혼한다. 그 결과 어떤 나라에서는 전국의 가정 중 50%가 부모 중 어느 한쪽만 있는 가정으로 집계되기도 한다.

이에 더하여 대부분의 여성들이 배우자와는 별도의 직업을 가짐으로써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여성들이 그들의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을 훨씬 쉽게 만들어준다.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생활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녀들은 이제 단지 음식과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고통을 견딜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선택 할 수 있는 위치에 들어서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 만을 갖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교황은 계속해서 이혼을 비난하고 있지만 50% 이상의 부부들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며,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게 되면 이혼해 버린다.

보수세력들은 이혼한 부부의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으로부터 악영향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옳지 않다. 실제로는 직업적으로 성공하여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혼한 부모들의 자녀들이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서로 위협하며 싸우고 다투는 부모와 부조화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부모 중 어느 한쪽과 조화 속에서 사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라엘리안들은 ‘영원하지 않은’ 결혼을 축하해준다. 라엘리안 사제는 결혼식장에 선 커플에게 이렇게 말함으로써 성혼시킨다. “단 일주일 동안이건, 한달 동안이건, 일 년 동안이건, 일생 동안이건, 행복하게 함께 사세요. 그러나 더 이상 함께 지내기 어렵게 되면, 서로 미워하게 되기 전에 헤어질 수 있는 현명함을 가지세요.”

우리는 또한 같은 장소에서 이혼도 축하해 준다. 왜냐하면 우리 라엘리안들에게는 모든 것이 축하와 파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라엘리안 사제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 커플의 이혼을 성사시킨다. “ 당신들은 한동안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제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 살았을 때 서로 간에 지녔던 것과 똑같은 사랑과 존중심을 지니고, 헤어져서도 행복하게 사세요.” 그리고 이혼식은 마지막 키스로써 끝마친다.

헤어지는 커플들 사이에 지속되는 이 조화감은 특히 자녀들이 있어서 그 의식에 참석하는 경우에는 매우 중요하다. 자녀들은 조화롭게 함께 살다가 또 조화롭게 헤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그들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혼을 비난하고 죄악시하는 낡은 전통적 종교들은 오직 증오심만 부채질하고 때로는 폭력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결국 더럽고 고통스러운 이혼으로 끝내게 된다. 사랑하며 함께 사는 것 만큼이나 조화롭게 헤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구시대적 죄악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인간의 평균수명은 약 85세인데, 이것은 곧 120세까지 연장 될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장래에 평균수명은 200세가 되고, 나아가 900세 까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복제기술을 이용하여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이 가능해지고, 게다가 더 이상 일할 필요도 없어 질 것이다.

평균수명이 35세일 때보다 85세일 때가 일생동안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900년 동안을 함께 살아야 한다면 어떻겠는지 한번 상상해 보라. 영원히 그렇게 해야 한다면 말할 나위 도 없다!

어떤 예외적인 커플들은 정말로 영원히 함께 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파트너들과 다양한 기간동안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만약 영원한 생명을 누릴 권리와 아기를 가질 권리 중 하나를 선 택하게 한다면,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는 매우 적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헤어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고, 따라서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쁨을 즐기며 살 수 있게 된다.

일할 필요없는 사회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들은 항상 쾌락과 오락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가상게임과 현실의 경험 사이를 오가면서 다른 인간들 또는 생물로봇들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고, 동료 인간들과우정을 나누며 전자 마약을 즐기거나 예술과 과학연구 등을 하며 지내는 미래의 세계는 하루하루가 끊임없이 다양한 쾌락의 연속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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