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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의미 부여하기

우리는 적게 소유할수록 더 많이 존재하고,

많이 소유할수록 더 적게 존재합니다.”

존재하면서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가?”

세미나 기간 중에 어떤 사람이 예언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 라엘, 물질을 소유하는것에 대해 조언을 듣고싶습니다. 과도한 소 비 지향적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소유의 욕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소유의 욕구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자유롭게 정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자신이 소유하고있는것에 소유당한다 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언젠가 나는 이런 멋진 문구를 읽은 적 이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욕구를 제한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돈을 많이 벌수록 돈이 더욱 더 필요해 지기 때문 이지요.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적게 소유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지나치게 적게 소유하는 것은 결코 파괴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사람은 그만큼 더 대가를지불해야 하고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합니다. 그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또 은행계좌 들을 관리 하는데 더많은 신경을 써야 만 합니다. 이것은 악순환 이지요.

“ 필요 한것만 소유한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아무 것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산더미 같은 물질을 소유하고도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 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가장 강력하게 충고하는 말은 빚을 쓰지 말라 는 것입니다. 빚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가진 것에맞춰 사는편이 훨씬 낫습니다. 예를들면 처음에는작은차를 몇 년간 타다가 충분한 돈을 모은 뒤 더 멋지고 큰 차를 사는것이지요. 몇 년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빚의 대가는 너무 큽니다. 마치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여러분은 인생의 삼분의 일을 은행을 살찌우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빚을 내어 물건을 사는 것은 덧없는 기쁨을 잠시줄 뿐 당신을 진정한 행복으로 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우리 사회 는 불 필요한 욕구를 창출 해 내어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 지 않으면 사회적지위에 걸맞게 처신할 수도 없고 인정 받을수도 없 으며 무시당할 것 이라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우리가 오늘날의 정치 경제시스템에 착취 당하는 현대판 노예 제도 입니다. 소유와 지식에 의존 하도록 유도하는 이 시스템은 우리를 “존재”로 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는 중요하지만 그러나 맹목적 인 지식 사냥은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나치게 많이 아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놀라울 만 큼 많은 지식을 쌓고 또 수많은 학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직 “존 재” 에 이르지 못한 채 아주 불행하게 살기도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혹은많이 안다고 생각할 수록 실상 우리는 더 적게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존재” 하는 것을 방 해하기 때문이지요.

“존재” 하는 사람은 “지식” 의 노예도 아니며 또한 “소유” 의 노예도아닙니다.

몬트리올 집회 :

1999년 (AH 53년 ) 4월 첫째 일요일

소유와 지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행복 을 “소유” 할 수 없으며 또한 행복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행복“ 할 수는 있습니다 .

“소유 ” 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불행을 가져다 주 는 것도 아닙니다. 소유가 가져다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 유란우리가 그것에 부여하는 가치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닙니다.

“지식” 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식이 가져다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따라서 지식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름답고귀여운 새를 발견하고는 “이 새의 학명은 콜리브리우스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 새는 날아가 버 리고 맙니다. 그. 새의 특이한 모습과 아름다운 깃털에 감탄할 시간 조차 없지요. 지식은 우리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것과 는 아무런 관계 가 없으며 무한을의식하는 것과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소유와 지식을 우선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날의 세계는 “아는 자들” 과 “가진 자들” 이 지배하고 있지만 궁극적 으로는 “존재하는 자들” 이 결정권을 갖고 지구인들을 이끌어야 만 합 니다.

소유는 행복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중독 시키는 마약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소유의 쾌감은 일시적인 것으로서 어느순간 스러져 버립니다. 그렇지만 “ 의식 ”과 “존재” 는그렇지 않지요. 의식과 존재는 계속 성장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의식을 높이기로마음 먹은 사람에게는 나이 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쁨과 과학 그리고 종교

“더 멀리 앞서 갈수록 뒤처질 염려가 없습니다.”

인간은 어린 시절에는 기쁨을 획득하는 방법을 선천적으로 알고 있지만 성장하면서 그 방법을 상실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성인 이 되어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큰노력이 듭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각종 세미나와 수련과정에 참가할까요? 물 론 행복해지기 위해서이지요. 모든인간의 목표는 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날 부터 모순 되는 말들에 부딪칩니다.

“ 네죄를 회개하라.” 이것이 행복 해지는 방법 인가요?

“섹스를 경계하라.”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아닙니까?

“ 고통속에 아기를 낳아라.” 이것이 행복을 가져다 줍니까?

“이마에 땀 흘려 빵값을 벌어라.” 여기에 무슨 행복이 있습니까?

이런말도 듣지요 . “행복해 질수는 있지만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서도 행복해 질수 있는 것은 사실 이 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금기사항 들이 자꾸 쌓이면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시간에는 전등을 켜서는 안 되고 저 날짜에는 이런 접시를 사용할수없다. 이것도 해서는 안되고 저것도 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말들이 두꺼운 책에 쓰여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용 된것만 적는 것이 더 빠를 지경입니다. 그렇게 하면 책도 그렇게 두꺼울 필요가 없겠지요!

두 가지 기본 사항만 지킨다면 모든 것들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즉 자신에 대한 존중 및 타인에 대한 존중입니다. 이것은 바로 비폭력을 의미합니다.

그 나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원하는 대로 생각할 자유, 원하는 대로 존재할 자유, 원하는 대로 믿을 자유 가 있으며 또한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과학을 이용하여 무엇이든 창조하고 발견 해 낼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과학은 행복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줌으로써 우리가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보다 많은 즐거움을 누릴수 있게 해 주며 또한 우리의 삶을 활짝 피어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까 운 거리의 여행도 엄청난 모험이었지요. 오늘날 우리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수 천 마일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을이나 지역을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었으며, 불과 백킬로 미터 밖에서 무슨일 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차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집은 겨울에는 추웠고 밤에는 어두웠습니다. 그들은 마실 물 을 얻기 위해 겨울에는 얼음을 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사람들은그런 과거를 그리워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시대에 예언자로 된 것이 매우 행복합니다.

물론 나는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몹니다만, 이것 또한 기적이 아닌가요! 이것은 바로 인간의 창조성과 지성이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멀리 발전해 가기 때문에 우리가 적응할수 없다고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멀리” 가면 갈수록 그만큼 뒤처질 우려는 적어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이거나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가장 황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지금부 터 20년내지 30년 안에 모두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런 것들 중에는 우리가 아직 생각하기 시작조차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모든 것들이 매년 그 성능이 배가되는 컴퓨터 의 가속적인 발달 덕분에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가 오는 10년 동안에 인류의 전 역사동안 이룬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발견 해낼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기간은 5년으로 단축될 것이며, 그 다음에는 2, 1년, 6개월, 하루, 1분으로 단축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우리는 “절대 지식” 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우주의 모든 원리들을 알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1900년 경, 누군지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어느 유명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다 발명해 버려서 더 이상 발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후손들에게는 슬픈 일이다.” 그는 진정으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 당시 기차와 철도가 막 발명되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그의 말에 웃음을 짓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실상 그들이 알고있는 것은 거의없습니다.

과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매일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 은 사물을보는 방법도 알지 못하고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잊어버 렸습니다.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요구합니다. “ 그들 자신이나 가족들이 아무리 아프더라도 줄기세포 연구로 부터 얻어지는 의료기술의 혜택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진술서에 서명하라 고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에 일관성을 갖지 않으면 안될것입니다.

의식과 지성

1984년 8월, 프랑스 강쥬 세미나에서

얄팍한 지성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매년 높은 학위를 지닌 사람들이 세미나에 많이 오지만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라엘, 내가 대학교에서 여러해 동안 배웠던 모든것보다 여기서 당신에게 배운것이 더 많습니다.”

맞는말입니다. 여기 도착 했을때 그들의 머리속에는 잡다한 지 식들로 가득차 있었지만 진정으로 가치있는것 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아는것이 거의없었습니다!

지성이란 우리에게 사물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그들을 서로연결 시키는 방법을 찾을수 있도록 만들어주 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음악과 화학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틀렸습니다. 실제로 그 둘은 매우 가깝습니다. 음악과 화학은 둘 다 진동과 물질이동및 합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우리의 의식을 사용하는 단계입니다. 의식이란 외부의지식을 내면화 하여 자신에게 통합 시킴으로써 그지식이 자신의 일부가 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냉랭한 외부 정보들만으로는 충분 하지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이런정보 들을 자신의 인격과 연결시키는것입니다.

의식은 감각적인 형태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느낌과 경험이 요구됩니다. 의식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깊은 사유로부터 오는것도 아닙니다. 지성이 두뇌 세포들 사이의 연결을 만들면 그 결과로 의식이 생깁니다. 나는 감각과 지성의 완벽한 조화가 의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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