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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을 향한문(인간복제)
인간복제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 현재로서는 복제된 세포는 통상적인 임신에서와 같이 엄마의 자궁 속에서 만 9개월 동안 자란 뒤 아기로 태어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장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사실 이것은 당신보다 몇 년 늦게 태어난 쌍둥이 형제를 갖는 것과 다른 점이 없다. 당신의 유전자코드 샘플을 채취하여 난자에 주입하면 당신의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 뿐이다.
물론 이 쌍둥이는 당신과는 완전히 다른 교육을 받고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의 쌍둥이 가 복제되어 중국가정에 태어난다면, 그는 자라서 틀림없이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로 말하고 또 식사할 때는 당신보다 젓가락을 훨씬 잘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격리된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행한 연구에서 쌍둥이들은 세세한 점에서는 서로 다를지라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음식, 책, 색상, 심지어는 배우자에 대해서까지 동일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이연구결과는 사람의 개성과 지성이 유전적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밝혀 주는 과학적 발견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인간복제의 다음 단계, 즉 제 2단계는 성장촉진술(AGP) 이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육체적 능력이 절정기에 달해 있는 15세 내지 17세 정도의 성인으로 바로 복제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복제는 단지 육체의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 컴퓨터의 하드 웨어나 공테이프처럼 아무런 기억이나 인격이 없다.
나는 엘로힘이 나의 이마에서 채취한 세포 하나를 거대한 수족관 처럼 생긴 기계 속에 넣는 것을 보았으며 (우주인의 메시지 참조 ), 나 자신의 완전한 복사판이 그 기계 내부에서 단 몇 초만에 성장하는 것 을 지켜보았다.
제 3단계를 위해서는 이미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처럼 인간 의 기억과 개성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육체가 사망한 후에도 컴퓨터 속에서 언제까지나 존 재할 수 있고, 또 주위 환경과 교류할 수도 있게 된다. 이 컴퓨터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으면 스피커를 통해 친구들과 대화도 할 수 있고, 옛날 어린 시절의 급우들을 알아보고 서로 추억을 나눌 수도 있다. 또한 가상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노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생전에라도 일시적으로 컴퓨터에 다운로드, 아니 업로드하 여 지식을 얻거나 가상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런 뒤 원래의 몸에 다시 다운로드하게 되면 새로운 기술이나 정보를 지닐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인간복제 제 3단계의 경우, 개성이나 기억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하는 대신 막 복제한 자신의 젊은 몸 속에 그것을 직접 입력해 넣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 삽입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모든 기억과 개성을 유지한 채 젊은 몸으로 눈을 뜬 뒤 또 한번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새로 복제된 몸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몸을 복제하는 식으로 우리는 이것을 영원히 되풀이 할 수가 있다.
엘로힘은 이런 방식으로 영원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제란 영원한 생명에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바보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검토해보자 :
「인간복제에 의해 인구과잉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실제로 클로나이드에 문의해온 사람들의 수를 보면, 고객이 될 수 있는 사람 수는 약 1만명 정도 밖에 안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다른 치료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임문제를 가진 가족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전세계에서 자연적으로 태어나고 있는 아기 들의 수는 시간에 14,000명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매년 1억 2천만 명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복제에 의해 만 명의 아기들이 더 태어난다해도 그것은 연간출생수의 0.01% 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서, 자연적인 출생이 전혀 억제되지 않고 있는 현상황에서 이것이 도대체 어떤 차이를 준다는 말인가?
인구과잉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한 가족이 낳을수있 는 아기의 수를 제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이것은 대단히 현명하게도 중국이 실행해 왔던 방법이다. 한 사람이 한 명의 자녀를 갖게 된다면 인구는 안정을 유지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교황은 아직도 피임과 중절수술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런 교황이야말로 1만 명의 복제아기 탄생보다도 인구과잉에 훨씬 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는 불임의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이 아기를 하나 가질 권리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카톨릭 가족에게는 10명 이상의 아기를 갖는 것도 허용하면서... 복제가 아니라 이들이야 말로 인구과잉의 진정한 범인들이다!
「인간복제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감소시킨다」
60억의 사람들이 자연적인 방법으로 출산하는 행위를 계속하는 한, 겨우 1만 명의 불임부부들이 아기를 한 명씩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감소시킬 우려는 없다. 전세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임부부들은 계속 종래의 방법대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아기를 낳는다.
만약 그들이 인류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켜야한다는 이 왜곡된 논리를 계속 주장한다면, 우리는 쌍둥이 또는 세쌍둥이 등을 임신하고 있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강제로 중절수술을 시행해야 될 것 아닌가? 최근 이탈리아의 어느 여성이 여덟 쌍둥이를 낳았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아기가 8명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축복했다! 그러나 만약 이 여덟 쌍둥이가 복제에 의해 태어났다면 모든 사람들 이 분노했을 것이다! 왜 이와 같이 불공평한 일이 있어야만 하는가? 왜 우연의 결과로 생겨난 아기들이 과학적인 계획으로 태어난 아기들 보다 더 존중받아야만 하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동일한 유전자 코드를 가진 사람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생물학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규칙으로서 동일한 시간에 살 수 있는 동일한「(型)」형 의 사람 수를 한 명 또는 쌍둥이처럼 최고 두 명으로 제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엘로힘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칙은 모든 종류의 출산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동일한 유전자 코드를 지닌 사람이 2명 이상 존재하는 것이 불법 이라고 한다면, 쌍둥이 또한 불법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쌍둥이를 임신한 어머니들에게 그 중 한 아이를 중절시키는 수술을 강제로 시행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쌍둥이를 인정한다면, 복제에 의해 태어나는 쌍둥이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중(二重) 잣대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쌍둥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동일한 문제가 세쌍둥이, 네쌍 둥이, 혹은 그 이상의 다산에 대해서도 제기된다. 이 경우 우리는 두 명 이상의 아기들은 모두 강제로 중절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하는 대신, 우리는 복제로 태어날 수 있는 아기의 수를 「자연적」 으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인정될 수 있는 수와 동일한 수 로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수를 8명으로 할 것인가? 좀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중요한 점은 복제로 태어나는 아기의 수를 제한 하는 어떠한 규칙도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차별이 된다.
「복제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수태의 순간부터 복제 아기들은 역사상 그 어떤 아기들보다도 엄격하게 체크될 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유전자의학에 의해 태아가 어떤 이상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를 수태 후 최초의 수 주간 동안에 확인할 수가 있다.
자연적인 방법으로 임신된 괴물들이 매일 태어나고 있지만, 아직까 지 아무도 이와 같은 기형아들의 출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최근 서로 몸이 붙은 쌍둥이 중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한 명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그 쌍둥이의 부모는 “그냥 하느님에게 맡겨두자” 라고 했지만, 결국 법원은 그 부모의 희망을 기각하고 한 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한명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만약 몸이 붙은 이런 쌍둥이가 복제에 의해 태어났다면, 전 세계가 들고 일어나 복제기술에 의해 “ 태어난 이 괴물을 보라 라고 !” 떠들었을 것이다. 특히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한 명을 죽이지 않으면 안될 때는 더욱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그 쌍둥이 자매는 자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도 그다지 안색을 붉히지 않았다.
괴물에 관해 몇 사람의 예를 더 들어보자면, 아돌프 히틀러도 죠지 프 스탈린도 복제에 의해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고로 죽은 아이를 복제하여 태어난 아이가 성장한 뒤, 자신이 누군가의 대신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 」
아이를 잘 키우면, 그는 자기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데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아기를 잃고 난 뒤 곧 자연적인 방법으로 새 아기를 임신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전의 아기가 죽은 다음에 임신하여 태어났다고 해서, 새 아기가 행복해질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는 부모는 그들 중 아무도 없다.
부모로부터 학대받거나 아무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 중에도 나중에 균형잡히고 조화로운 삶을 사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온갖 사랑에 둘러싸여 자란 아이들 중에도 나중에는 마약에 빠지거나 범죄자가 되거나 심지어는 자살까지 해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것은 임신하는 방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히틀러, 스탈린, 나폴레옹은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복제아기가 성장하면 부모는 그에게 진실을 말해 줄 것인지 아니 면 말해 주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태어 난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 중 한 쪽이 그들의 유전적 부모가 아닌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입양아의 경우에는 부모 중 어느 쪽도 그의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란 뒤 진실을 말해 주기도 하지만, 특히 아주 어릴 때 입양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입양아들의 느낌은 한결같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 은 그들의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을 준 사람이 누구인가” 라는 것이다. 유전적 부모를 다시 만나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자신을 진정한 가족으로서 입양해 준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사랑이다.
「인간복제가 합법화된다면 정부는 복제된 병사들로써 강력한 군대를 만들 것이다」
아직도 이런 바보같은 말을 믿는 사람은 20세기적 뇌, 아니 선사 시대적 뇌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라크나 코소보에서의 전쟁 등 현대전을 살펴보면, 잘 훈련된 병사가 수천 수만 명 있더라도 현대 의 첨단기술 앞에서는 전혀 무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UN군을 이끌었던 미국은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그들의 병사를 지상전에 한사람도 투입할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간단히 적들을 분쇄했다. 이 전투 들에서 희생된 수천 명의 적들에 비교하면 사실상 미국병사는 한명 도 죽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또 이라크와 세르비아에는 복무기간이 아주 긴 강제징병제도가 있는 반면 미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런 병사들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하는가! 그들은 추적장치들을 피할 수 있는 미국의 스텔스기에 손끝하나 댈 수 없었으며 바늘로 찌르듯이 정확하게 목표를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들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면 수백만 명의 재래식 지상군을 쓸어버리는데 천명 미만의 조종사가 필요할 뿐인 판국에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복제병사들을 이용한다는 발상은 완전히 시간낭비일 따름이다.
「복제된 아이들은 수명이 짧을 것이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70세 된 노인의 세포를 복제에 이용할 경우 태어나는 아기는 이미 70세가 되어 버린 세포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이것은 틀린 이론이다. 그러나 설사그이론이 옳다고 하더라도 10개월 된 아기를 복제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평균수명 80세에서 10개월쯤 모자라는 정도는 무시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자 세상사람들은 짧아진 텔로미어 때문에 돌리는 빨리 노화하게 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얼마 후 사람들은 돌리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정상적으로 생식할 수도 있고 또한 또래의 다른 양들과 동일한 기대수명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뒤이은 실험들을 통해 복제된 생명체들의 텔로미어 길이는 일반적인 생명체들의 그것과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 하와이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일곱 세대가 지나서도 복제된 생명체의 텔로미어가 짧아지기는 커녕 어떤 경우 몇 몇 세포들은 원래보다 더 젊은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곤경에 빠져 있다. 우리는 실로 영원한 삶 의 비밀에 바짝 다가서 있는 것이다!
「복제는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복제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항생제, 심장이식, 수혈, 틀니, 나아가 매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술되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료기술과 치료들도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경우 진실로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평균수명이 35세에도 미치지 못하고, 병원도 없으며 위생시설도 없는 나라에서 의 90% 어린이들이 매일 죽어나가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가 바로 이것인가? 자연옹호자들 중 어느 누가, 죽어가는 자기 아이나 어머니가 최신 의료기술로 치료받는 것을 거부하겠는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복제를 반대하며 우리를 ‘아기를 복제하려는 사교집단’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수혈을 거부하는 것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복제에 반대하는 그들의 자세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과학을 거부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미래의 세대에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당연히 죽어야만 한다」
무슨 권리로 당신은 미래세대의 사람들이 현세대의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생명의 권리는 어떠한 문화에서도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수명이 연장될 수 있고 또한 영원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어떤 근거로 몇 살의 나이에 이 신성한 생명의 권리가 포기되어야 한단 말인가? 당신은 삶을 종식시켜야 하는 나이를 몇 살로 책정하기를 원하는가?
물론 너무 불행하거나 괴롭거나 아프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영원한 생명을 강요해서 는 절대로 안된다.
내가 강연회에서 종종 언급하고 있는 말이지만 “죽고 싶으면 죽으면 된다!” 그러면 계속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여유공간 이 생기게 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그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결코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영원한 삶을 준다면 그것은 새 디즘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에게는 새로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골고다의 언덕처럼 고통스럽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각자가 선택할 문제로서 결코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이 문제에 관해 일반 사람들 사이에 설문조사를 한다면, 거의 틀림없이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들은 영원히 살기를 택할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어 노쇠해진 노인이나 병약한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병이 들어 온갖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즐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옛날과같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들도 더 이상 죽고 싶어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노인들은 운동을 하거나 약을 먹거나 함으로써 가능한 한 오래 살려고 노력한다.
극단적인 침체상태에 빠지지 않는 한 죽고싶다는 생각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육체적으로 좋은 건강상태에 있는 사람들로서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별로 많지는 않겠지만) 우선 우울증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 중 아무도 더 이상 죽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든 젊든 간에,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나 커서 견딜 수 없는 경우에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만 한다. 이것은 안락사의 문제로 연결된다. 즉 그들의 고통을 치료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기를 선택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는 육체적 고통 및 정신적 고통, 이 두 가지 고통이 모두 해당된다고 강조 하고 싶다. 바스크 지방에서는 최근 안락사가 합법화되었는데 이것은 경탄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권리는 치료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마치 정신적 고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골수암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그 고통의 부위를 확인할 수 없을 뿐인 것이다.
치료 불가능한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과 비교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행위는 정신적 고통보다 육체적 고통을 우선시하는 낡은 의료체계에 그 책임이 있으며, 이것은 명백히 부당한 차별이다.
안락사는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치료할 수 없는 고통 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어야만 한다.
영원히 살 권리와 죽을 권리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현대사회에서는 동일한 가치를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
「영원히 산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루할 것이다」
그런 말은 이미 지루해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대사이다! 언제나 온갖 새로운 즐거움으로 가득찬 열정을 지니고 삶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결코 지루해질 수가 없다.
어느날 한 기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언제나 같은 사람들과 만난다면 참으로 지루할 겁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60억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어떤 사람과 알고 지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어야 된다고 치자 (실제로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과 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할 일도 많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하루에 세 명 정도 새로 만날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 년에 새로운 사람을 천 명 정도 만날 수 있 는 셈이 된다.
현재의 평균수명 80년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어린 시절의 10년 을 빼고 나면, 우리는 약 7만 명과 만날 수 있다. 즉 정상적인 수명동안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7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숫자는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 중에서 10만 명 당 겨우 한명 남짓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현재와 같은 수의 인구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면 그, 절반의 사람들과만나는 데에도 약 300 만년이 걸리게 된다.
게다가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났을 시점에는 처음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잊어버리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들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너무나 변해 버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엘로힘의 가르침 중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인데, 불교에도 이 가르침이 반영되어 있다. 즉 우리는 결코 같은 강에서 두 번 목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시 강에 돌아 올 때는 강물이 이미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같은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항상 새로운 눈으로 배우자를 보고 그 가 계속 변화하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에 경이감을 느낄 수 있는 의식 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동일한 배우자와 아주 오랫동안 사랑을 유지하며 함께 살 수 있다.
언제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지루하다고 말도 안된다.
이것은 사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똑같은 일출은 두 번 다시 없다. 설사 일출이 항상 똑같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일출을 볼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산다고 해서 지루해지는 일은 결코 없는 것이다.
지루함이란 우리의 환경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수명이 길어지는 데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20세가 되기도 전에 사는 것이 너무나 지루해져서 자살해 버리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존재하는 기쁨을 항상 마음껏 즐기며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을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는 「소유 」 와 「지식」 의 문화를 「존재 」 의 문화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신적 지도자들을 「위험한 구루(교조) 」 라거나 「사교 집단의 리더」 라고 부르며 모욕하는 대신, 그들의 가르침이 우리 사회에 전파될수있도록 장려해야만 한다. 「구루」 라는 단어는 「각성시킨다, 살아 있는 매순간 경이를 느끼도록 가르친다」 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이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순간에 경이를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이 중단되기 를 바라지 않게 되며 영원히 행복해질 준비가 갖추어진다.
「 두려움은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
사람들은 왜 인간복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 는가?
우선 우리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대중의 의견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중은 그 소수의 관점에 더 이상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윤리적 권위를 부여해왔다.
한편, 미디어는 대중에게 겁을 주기 위해 권위 있는 목소리로서 이런 소수의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렇게 겁을 주면 더 높은 시청률과 더 많은 판매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범죄, 전쟁, 끔찍한 사건, 스캔들 등을 보도하면 단순히 좋은 뉴스 보다 훨씬 잘 팔린다. 따라서 미디어의 관심은 광란을 불러일으키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도 마구 보도하는데 있다.
루마니아의 티미소아라 학살사건의 경우 그들은 희생자의 수를 부풀리기도 했다. 실제로는 수십 명이 희생되었을 뿐인데도 그 숫자는 기자들에 의해 수백 명, 나아가서는 수천 명으로 과장되었다! 정직한 기자가 진실한 숫자를 보도하면 엄중한 질책을 받았다. 수천 명의 희생자가 난 것이 진실이 아닌데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는 수정주의자로 불리게 된다..
최근 인터넷상의 공개토론, 예를 들면 BBC 가 주최한 공개토론에 서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간복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미디어는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언제나 복제에 관해 조금이라도 이해할 능력조차 없는, 지나간 시대를 대변하는 소수 보수주의자들의 의견만을 보도한다.
예를 들어 보자. 로마교황은 항상 모든 진보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오랜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
우리는 바티칸이 모든 새로운 발견들을 비난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티칸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들에도 생명이 존재한다고 말한 지오다노 브루노를 불태워 죽였다. 또한 최초로 포크를 사용하여 음식을 먹은 사람들을 파문에 처했다. 그 이유는 음식이란 신이 내린 선물이기 때문에 손으로만 만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증기기관, 전기 등등도 마찬가지였으며, 피임과 중절수술 에 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미디어는 이런 바티칸의 입장을 채택하고, 다른 종교들의 견해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복제를 지지하기로 결정한 유대교 랍비들 및 이슬람교와 불교의 지도자들이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들에 관해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이슬람교 및 유대교 지도자들은 “신이 인간에게 이와 같은 기술을 발견하게 하고 또 사용하도록 허용했다면 그것은 신의 의지의 일부이다 ” 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전능한 창조자인 신을 믿지 않는 불교지도자들은 ‘복제는 긍정적인 카르마 ( =업, 인과응보)’ 라고 말한다. 즉 복제는 영혼이 윤회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 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는 로마교황의 성명서만을 보도하고 있다.
우리는 한 가지 방법만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제한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를 일반화 시키려 하고, 차이를 호도하려 하고, 좁고 곧은 정격에서 벗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극악무도한 괴물이라는 딱 지를 붙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비난이 종교적 소수파들에게도 던져지고 있으며 그들을 미신 또는 사교집단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은 것을 믿고, 같은 것을 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의해 세계적인 사상의 교류가 가능해진 덕분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이제 자기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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