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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에 따라 아기를 만든다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아기의 특성을 어느 정도 선택하는 것은 이미 가능하게 된 일이다. 원하기만 한다면 아들과 딸을 선택하여 낳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런 선택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나라들도 몇몇 있다.

그러나 매우 가까운 장래에 아기의 모든 특성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러면 실제로 메뉴를 보고 아기를 가질 수가 있게 된다.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우습다.

현재로는 모든 것이 우연에 맡겨져 있는데, 아직도 여전히 원시적 이거나 미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뜻’ 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가족들은 종종 장애를 지닌 선천적 기형아들을 낳게 되며, 그 아이들은 일생동안 고통받고 수명도 대개 매우 짧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 우리 사회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들은 쉽게 회피될 수도 있었다.

건강한 아이만을 태어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 하고 일생동안 고통받으며 살 아이들을 태어나도록 허용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복제로 만들어진 아이는 부모가 진짜로 원했던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아이의 정신적 균형에 위험을 줄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이 우리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며, 새로 태어날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 라고 말한다. 그토록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사랑과 배려에 넘치던 사람들이 막상 아이들의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꼬리를 내려버린다. 그들은 갑자기 “자연에 맡겨 두는 것이 좋다” 라고 말하며, 유전적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임신되는 것을 예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제를 통해 장애없이 태어나는 것보다 한쪽 팔이나 다리없이 태어나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일이 라는 것은 자명하다.

태어날 아기의 성을 선택하는 데 반대하는 것도 모순이다. 만약 어느 가족이 아들을 원하는데 딸이 태어났다면, 그 여자아이는 더 배척받고 구박받기 쉬울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데 팔려 나가거나 살해 당할 수도 있는데, 불행하게도 어떤 나라들에서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딸이 태어났다고 해서 그만큼 야만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내지는 않는 더욱 문명화된 나라에서 일지라도, 이런 감정은 아이의 조화로운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태어날 아기의 성을 가족들이 결정하게 하면 그 아기는 100% 원했던 아기로서 사랑받을 것이 확실하다. 이것이야 말로 아이들의 장래 를 위해 진정으로 배려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아들과 딸 모두를 원하기 때문에, 아기의 성을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 인구의 성 균형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복제를 통해 생식할 수 있게 되면 이런 일은 당연히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아를 많이 선택하거나 여아를 많이 선택하여 성의 균형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복제를 통해 그 인구집단의 존립을 위한 기본적인 출산율을 유지시켜줄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인 미국이 이 분야에서도 다시 한번 개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관수정(IVF) 을 처음으로 승인한 것은 바로 미국의 훌륭한 시스템인 최고재판소인데, 최고재판소의 판사들은 종신직으로서 집권당 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판결 근거는 미국의 헌법은 자신의 출산 방법을 선택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으로서, 결과적으로 오늘날 매일 수백 명의 어머니들이 그 판결의 혜택을 받고 있다. 시험관수정에 적용되는 논리는 복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의 특성을 선택할 자유도 있는 것이다. 태어 날 아기의 부모가 그 아기의 육체적 및 지적 특성들을 선택하지 못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

게다가 아기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면 할수록 그 아기는 더욱 더 사랑받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바로 아기의 행복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 가족이 자기 아이가 자기 분야에서 천재가 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어떤 해악이 생기겠는가? 만약 우연에 맡겨둔다면 그들은 스포츠나 음악 외에는 아무 관심 없는 아이를 가지게 될지 모른다. 여기서 부모가 아이의 타고난 재능에 간섭함으로써 그 아이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커지는데,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 세상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던 일을 부모로부터 강요 받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끝없는 좌절에 비틀거리다가 자신의 고통을 자살로 끝장내 버리든지 아니면 마약이나 알코올에 빠져 자신을 서서히 죽음으로 밀어 넣고 있다.

만약 음악가 부부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를 원하고 또 그것을 유전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상황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부모와 아이는 함께 완벽한 행복을 느끼고,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 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며, 행복한 삶을 살며 재능에 넘치는 미래 의 거장은 사회의 진정한 자산으로 성장 해나갈 것이다.

높은 수준의 과학자 부부나 스포츠 부부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태어날 아기의 특성을 선택할 수 있다면, 부모와 미래의 아이 및 우리 사회가 모두 그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소위 모든 ‘윤리적 우려’ 는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원시적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그들은 무고한 아이가 어떤 결함을 타고나는 것도, 그의 삶을 명예롭게 만들 어떤 재능을 타고나는 것도, 모두 상상 속의 신이 내리는 결정에 맡겨두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우리 시대의 윤리적 의문들이 완전히 비윤리적으로 여겨질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윤리적 의문들은 태어날 아기들의 진정한 행복이나 인류의 미래를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사람들이 선택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만약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태어날 아기들의 특성을 우연에 맡겨두기보다는 자신들이 선택하기를 원할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 의식하는 것을 제한하는 종교적 믿음에 완전히 빠져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지 않은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예방할 방법을 알고 있는 기형, 장애 또는 일생을 괴롭힐 질병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도록 결정하는 일 을 그런 소수의 사람들에게 맡겨두어야만 할 것인가” 일 것이다.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더라도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그 어머니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윤리적으로 옳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을 숫자적으로 누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이 장애아들을 보살필 부담을 우리 사회에 떠 넘길 권리를 갖고 있는가 ? 그렇게 태어난 장애아들은 바로 낡은 종교적 믿음에 근거한 그들의 범죄적인 결정의 결과가 아닌가?

종교적 동기라면 무슨 범죄라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더 이상 종교적 헌신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인류의 희생을 용납하지 않게 되었으며, 마침내 종교적 믿음에 근거한 성기절제를 불법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또한 유전적 기형을 타고날 아이의 임신을 금지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을 방지할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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